#오늘의제3세계 1956년 3월 2일 모로코 독립, 1969년 하비에르 바르뎀 출생, 1970년 로데지아 공화국 선포,

모로코 독립과 함께 서사하라 민족해방전선(폴리사리오) 이야기와 하비에르 바르뎀의 지원, 로데지아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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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저녁 7시, 사당동 어반팜테이블에서 만나요 @yocla14
자신을 "신이 기네 비사우에 보낸 선물"이라 불렀지만 그의 치하에서 기네 비사우는 마약 거래기지로 전락했다. 80년대 방한한 적도 있는 호앙 비레이라 대통령, 2009년 3월 2일 군대 간 소요의 와중에 암살. http://t.co/Gk8naUDN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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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은 아프리카에서 두 개의 나라가 '독립'한 날이기도. 우선 1956년 파리 조약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보호령이었던 모로코 왕국이 다시 독립을 회복, 1953년부터 마다가스카르에 유폐되었던 술탄 모하메드 5세가 다시 보좌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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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모로코가 유럽 열강의 손아귀에 들어갈 때 모로코는 프랑스가 차지하되 탕헤르 같은 지브롤터 해협의 도시는 스페인 보호령으로 남게 되었다. 그보다 훨씬 전인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스페인은 사하라를 식민지로 부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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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부터 모로코는 서사하라에 있는 부족들중 왕국과 주종관계를 맺은 이들이 있다는 점을 들어 그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해왔다. 1975년 11월, 스페인은 마드리드에 서사하라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온 모로코와 모리타니아를 불러들여 행정권을 양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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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는 이제껏 유엔과 국제사법재판소가 이 사안 관련 누차 강조해온 민족자결원칙과 완벽하게 배치된다는 점이었다. 우선 ICJ는 권고적 의견을 통해 사회정치조직을 갖춘 종족이나 민족이 사는 땅은 무주지로 간주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yocla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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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11월6일부터 이른바 "녹색 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시위대를 대거 서사하라로 투입한 모로코는 마드리드 협정(11월 14일)을 이끌어내고 병합을 시도하지만 폴리사리오 민족해방전선의 저항에 직면한다. http://t.co/5ONn2ixJ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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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와 리비아의 지원을 받은 폴리사리오 민족해방전선(현재도 그 본부는 알제리에 위치해있다)은 1979년 모리타니아를 몰아내고 1991년 유엔의 개입으로 종전할 때까지 모로코와 혈투를 벌인다. http://t.co/oKj6BUQ0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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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휴전과 함께 독립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양측이 합의했지만, 서로 투표에 참여가능한 범위를 놓고 양보를 하지 않아 아직까지도 투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와중에 모로코는 장벽까지 지어버렸다. http://t.co/7de52ZLK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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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서사하라 독립운동가아미나투 하이다르가 귀국하려다 국적을 기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페인으로 강제로 보내진 뒤 공항에서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인 사건으로 또 한번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었다.(경향) http://t.co/GWI42xuwZ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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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비에르 바르뎀의 생일. 그가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유엔 총회에 참석하여 전세계의 관심을 호소하기도 한 서사하라 문제를 그의 글로 알아보자.(CNN) http://t.co/pvGHaijyFv @yocla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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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3월 2잋 또 한 나라가 독립을 선언한다. 1965년 9월 11일, 흑인까지 포함하는 다수결선거를 통한 독립을 거부하며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던 로데지아가 입헌군주정을 폐지(엘리자베스 2세는 끝내 이 나라를 승인하지 않았다.)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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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을 통해 공화국이 된 것. 사실 65년부터 이 미승인국가가 생겼지만 1970년 공화국의 헌법에 나타난 지극히 교묘하고 악의적인 술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기에 이야기에 포함시켜 보았다. @yocla14 http://t.co/6XyhKrig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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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쏟아지는 경제제재(로데시아는 거의 모든 국가와 교역이 금지되었다)와 국제사회의 압력을 타개할 필요를 느낀 수상 이언 스미스는 헌법 개정을 들고 나오면서 "백,흑인간 평등한 파트너쉽"을 구축하겠노라 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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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흑인과 백인은 서로 다른 명부에 따라 투표를 하고, 실제로 의회에 선출되는 인원은 각 커뮤니티가 납부하는 세금에 따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이 그럴듯해보이는 방식은 백인이민자 유입을 통해 흑인 선출을 제한하려는 술책에 불과했다. @yocla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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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찬성에 힘입어 공화국을 선언한 이언 스미스는 다음해 영국과의 협상에서 로데지아 내 백인들의 토지소유(4%미만이 50%이상을 차지)를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고 거부당했다.1965년 타임 표지의 이언 스미스. http://t.co/a755iK3i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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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부터 모잠비크 등지에 거점을 둔 맑스주의 게릴라 집단과 로데지아 군 사이의 내전(일명 부시 전쟁)이 시작된다. 전쟁 당시 게릴라들이 심문당하던 모습을 포착한 Baughman의 사진은 퓰리처를 수상. http://t.co/uw2lJY3W5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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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저녁 7시, 사당동 어반팜테이블에서 만나요 @yocla14
결국 1980년 흑인이 침여하는 보통선거에 합의하고 87년 의회 내 백인쿼터가 없어질 때까지 의원으로 활동한 이언 스미스는 흑인다수의 통치가 "천년이 지나도 불가능"할거라는 믿음을 간직한채 2007년 사망했다. http://t.co/l4bG3DP8Z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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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저녁 7시, 사당동 어반팜테이블에서 만나요 @yocla14
"내 치하에서 사는 게 지금보단 낫다"고 비아냥댔던 스미스를 반박하기 애매할 정도로 무가베 정권은 반대파에 대한 탄압과 파탄적인 경제정책을 통해 짐바브웨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 상징인'100조 달러' 지폐. http://t.co/j5kRrvrD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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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그드루 자하드(sungbey) @7godsofchaos
@yocla14 "97년의 짐바브웨는 남부 아프리카의 곡창지대로서 궁핍한 이웃 나라에 종종 식량을 수출하기도 하면서 아프리카에서 경제가 가장 급성장하는 나라로 자리를 잡았다" - 내셔널지오그래픽 한국판 2003년 8월호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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