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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연 @sy876
오늘은 츠루하시에 있는 코리아타운, 조선학교 등을 보고,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1, 2, 3심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던 이철 선생님을 비롯한 재일동포 분들을 만났습니다. http://t.co/XH4Mge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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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연 @sy876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 분들을 만났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모국을 알고 싶어 한국으로 유학온 재일교포 2세들이 간첩으로 몰려 사형, 무기징역 등 무거운 형을 받고 오랜 옥살이 끝에 결성한 모임입니다.
정소연 @sy876
일본에서 왔으니 한국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변호사의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고, '지령'이 뭔지도 모를 만큼 한국어가 서툴어 방어권을 거의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남산 지하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답니다.
정소연 @sy876
이런 동우회원이 120명이 넘고 그중 삼십여명이 재심을 청구, 십수 명이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고대에 유학을 왔다가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체포되었던 회장 이철 선생님은 13년 옥살이를 했습니다. 27에 감옥에 들어가 마흔에 나왔습니다.
정소연 @sy876
이철 선생님의 약혼녀도 간첩방조죄로 삼년 육개월 옥살이를 했습니다. 마흔에 안동구치소를 나오자마자 결혼식을 한 선생님은 지금 재심청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구명운동을 도와주었던 일본의 활동가 분들도 오셨습니다.
정소연 @sy876
더 기가 막힌 것은 이철 선생님을 비롯한 대부분의 양심수들은 조총련에 반대한 민단 2세대였다는 점입니다. 집 팔고 차 팔아가며, 조총련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민단을 만든 아버지를 보고 자라, 그 모국이라는 데를 가서 배워 보려고 했던 거지요.
정소연 @sy876
이철 선생님은 이리 말씀하시더군요. 그렇게 1세대가 모국에 바친 걸 돌려달라는 생각은 안 하지만, 내가 유학 가서 모택동 좀 읽다가 잡혔으면 그냥 뺨 몇 대 때리고 너 아버지를 봐서도 그러지 마라 하고 쫓아내면 되었을 것을 어떻게 이리 하냐고.
정소연 @sy876
이철 선생님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쇼크로 그날 밤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정소연 @sy876
양심수동우회원들의 수감 햇수를 모두 합치면 700년쯤 된다고 합니다. 당시 간첩 누명을 쓰고 중형을 받은 분 중에는 사형이 집행되어 이제 어쩔 수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재심을 청구하며 고문과 긴 옥살이를 돌아보는 것도 엄청난 고통입니다.
정소연 @sy876
어제 갔던 어느 소학교에서 마침 과거 한인들 모습을 담은 사진전을 하고 있었다.작가님은 4. 3때 일본으로 온 제주도 분이었다.사진들 속에는 가난한 아이들, 일본어 간판들 사이로 치마저고리를 입고 걷는 여인들. http://t.co/PRvYuyL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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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연 @sy876
조선국적을 버리고 한국국적을 얻으면 일본영주권을 주었다고 한다. 반대 방향(한국->조선)으로는 신청을 아예 받아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복지정책에서 배제되었고, 연금 등의 수급권이 생겨난 다음도 당장 돈이 없으니 기여금을 내지 못했다.
정소연 @sy876
전시중인 일본 소학교는 아주 크고 번듯했다. 학생 중 70%이상이 한국/조선인이거나 부모 일방이 재일인 한국계라고 했다. 그 바로 옆에 허름한 조선학교가 있었다. 조선학교는 사립이고 국가지원이 없어 아주 비쌌다.
정소연 @sy876
바로 한 골목 옆이다. 일본소학교 학생들이 조선학교 학생들을 '고물 학교'에 다닌다고 놀렸다. 놀리는 아이들도 놀림받는 아이들도 다 한국계였다.
정소연 @sy876
소방차도 들어올 수 없고 지진이라도 한 번 나면 다 무너질 좁은 골목의 집들 명패에는 박, 김, 이, 한 이런 한국인이 쓸 법한 한자가 성의 두 한자 중 하나에 들어간 일본식 이름패가 걸려 있었다. 가끔 작고 빛바랜 태극기 스티커가 붙은 집도 있었다.
정소연 @sy876
한민족이니 뭐니 웃기넼ㅋㅋ민족주의 따위 개인을 희생하려는 권력의 무기야 속지맠ㅋㅋㅋ라며 살았는데,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고 조국으로부터도 배신당한 이들이 자신이 태어나지도 않은 나라의 애국가를 옛악보대로 부르는 모습 앞에서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정소연 @sy876
내가 뭘 안다고 그랬나. 직접 본다는 것은, 경험자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얼마나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가. "야, 민족이라니 그런 건 없엌ㅋㅋ"라는 오만은 참으로 얼마나 종이 위의 것에 불과했는가.
정소연 @sy876
지금도 민족이니 겨레니 통일이니 하는 문제에 대한 가치관 자체가 크게 바뀐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삶 속에 존재하는, 이름으로 운동으로 가족으로...구체적으로 분명히 있는 그 개념 자체에 대해서는 좀 더 겸손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소연 @sy876
또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철 선생님 후원회를 하신 일본인 분. 이분은 이철 선생님을 후원회 전에 알지도 못했고 학창시절동안 조선인을 본 적도 없었다 한다. 그런데 억울한 수감 소식에 후원회를 만들어 구명활동을 했다.>>
정소연 @sy876
>> 이철 님을 면회하기 위해 해마다 한 번씩, 다섯 번을 한국에 왔는데 그중 실제 면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번 뿐이었다. 다섯째 해에 고 김근태 님의 기록을 가지고 가 달라는 부탁을 받아 그걸 들고 출국하다 체포되어 영구입국금지.>>
정소연 @sy876
>>그래서 이철 님이 13년만에 출옥했을 때에도 한국에서 보지 못하고 마침내 그가 일본에 돌아왔을 때에야 만나, 사귀기 시작했다 한다. 어떻게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에게 그리 했냐는 질문에 그 분은 "어려운 질문이네요." 하고 쑥스럽게 웃었다.>>
정소연 @sy876
>> 연대의 범위가 넓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그냥 이런 분들은 공감하고 연대하고 활동하는 장의 크기가 더 넓다는 느낌.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상상력이 더 뛰어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
정소연 @sy876
>> 일본인이지만 한국인을 돕는 모습에 감동했다든가 '그런 모습을 보았으니' 나도 국내의 이주민의 인권을 위해 싸우겠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싶고 더 많은 연대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제일 행복한 고양이 @happiest_cat
@sy876 친구가 밀레니엄 시작 때 각국 신년소원 인터뷰를 티비에서 해줄 때 신년 소원으로 '세계평화'를 비는 프랑스 청년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아, 스케일이 다르구나' 하고 느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공감과 연대의 폭...
정소연 @sy876
조작간첩 사건의 피해자 고창표 님이 오늘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1983년 체포되어 불법 구금과 고문을 당하고, 재일교포인 사돈과 일본에 가서 육군사관학교 졸업생의 수 등 기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로 15년 형을 받아 10년을 복역했었습니다.
정소연 @sy876
>> 고창표 님은 영장도 없이 체포를 당해 안기부 지하 벙커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재판에서 조작된 간첩 혐의를 계속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안기부가 조작한 간첩 혐의를 그대로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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